폼페이 유적지 견문록
이탈리아 나폴리만 연안에 남서쪽으로 23Km 떨어진 베수비오 산 근처에 있으며, 사루누스(지금의 사르노) 강 어귀 북쪽 으로 흘러 든 선사시대의 용암에 의해 형성된 돌출부 위에 BC8세기 이전 오스크인이 살고 이후 그리스의 식민자인 에트리아인이 이주 정착 하다 포에니전쟁(한니발)이후로마의 식민 지배 를 받으면서 건설 된 고대도시 다 .
63년 대지진으로 재해를 입고, 79년 8월 24일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한순간에 멸망한 폼페이는 19세기에 들어 서서 그 유적들이 발굴된다. 드러난 유적은 고대 로마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다. 현재 발굴된 유적은 3/4 정도 이다.
현지인 들은 폼페이 유적을 스카비(Scavi)라고 부른다. 유적지의 입구는 마리나 문(Porta Marina)으로 당시 마을에서 항구로 통하던 길의 성문이다. 이 부근에는 폼페이에서 가장 큰 건물인 바실리카, 아폴로 신전, 주피터 신전 등이 있다. 중앙 광장인 포로(Foro)에는 도리아식 원주가 서 있고, 포로를 왼쪽으로 돌아 나가서 마첼룸을 지나면 주요 건물 유적 들이 있다. 파우니의 집, 베티의 집, 큐피드의 집 등, 당시 부유한 귀족들의 저택들이 늘어서 있다. 폼페이에서 발굴된 회화, 조각 등은 나폴리의 북쪽에 있는 국립 고고학 박물관에 전시 되어 있다.
반나절을 바쁘게 둘러 보았다. 내가 본것은 그중 일부다. 주마 간등식으로,,, 폭발 당시 2만5천명 정도 인구가 살고, 그중 반은 대피를 했다고 한다.
로마를 그대로 본떠 만든 도시다. 당시 최고의 문명 그리스와 로마가 만난 고대 도시.도시계획이 잘된 도시다. 마차도로는 돌로 도로 포장 되어 있고, 수래바퀴가 수백년 지나간 자리는 돌이 파여 길이 났다. 그 도로를 걷다보니 그때 마차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발굴된 당시 생활용품을 전시한 유물중 인상적인 것은 화산재에 뭍힌 사람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화석이다.
수도관이 이어지고, 싸우나, 술집까페, 러브호텔,,,요즘 누리는 현대식 도시 모습을 다 갖추고 있다. 로마가 망하는 것은 그 토록 위대한 로마인이 즐기던 포도주잔과 수도파이프의 수은 도금한 생활음용도구 였다고도 한다. 많은 세월 서서히 수은 중독에 걸려 난폭 해지고 치매증도 있고 서서히 몸과 정신이 황폐화 되어 그렇다고 도 한다.
개인의, 가문의 ,국가의 흥망성쇠를 한마디로 말 할수 는 없지만, 폼페이는 자연의 질서에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볼수 있다. 현재도 진행형인 베스비오활화산! 언제 또 그런일이 없다고 단언 할수 없다. 멸망은 인간이 스스로 택하 던지, 자연의 힘이던지,,,둘중에 하나일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