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체코
프라하 성
壹虛
2008. 11. 6. 16:47
2008년 10월 25일(토)동유럽10일차,,,VORONEZ호텔에서 아침을 먹고,프라하의 연인 찰영지로 이동,,,
현존하는 중세양식의 성 중 강큰 규모를 자랑 하는 프라하의 심장 프라하 성 으로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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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를교 위에서 본 프라하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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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도시 프라하의 심장이 되는 곳이 프라하 성이다. 체코를 찾는 이들의 대부분이 프라하 성(특히 야경)을 보기 위해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프라하 관광의 핵심이 된다. 로마네스크 양식에서 고딕과 르네상스, 바로크, 네오 고딕에 이르는 천년 이상의 건축사를 웅변한다. 체코의 국가적 상징물인 동시에 통치자들의 궁전으로 870년경 처음 건축되기 시작된 이래 수 차례의 변천을 거쳐 14세기 카를 4세 때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1918년 이후로는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고 있다. 성 정문 앞에서는 매시 정각에 근위병들의 교대 식이 행해진다. 이 중 정오에 벌어지는 교대 식이 가장 볼 만하다. 이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파노라마는 프라하의 역사를 건축미술을 통해 한 눈으로 읽게 해주고 있다.
길이 570m, 폭 128m인 프라하 성은 전 세계의 현존하는 중세양식의 성 중 가장 큰 규모이다. 동서로 길게 펼쳐진 이 성의 입구는 흐라트차니 광장에 면한 서쪽 정문과 말라스트라나 쪽의 동문, 성 정원쪽의 북문이 있다. 각 문에는 위병 2명씩이 지키고 서 있다. 위병은 7시부터 23시까지 1시간마다 교대한다. 정분에서는 매일 정오에 화려한 위병 교대식이 펼쳐지기도 한다.
프라하 성이 현재의 중요성을 갖게되는 결정적인 계기는 14세기 카를 4세(1346~78년 재위)때의 일이다. 그는 왕궁을 재건하고 성 비토의 성당을 세우면서 프라하 성을 완전히 새로운 모양으로 단장하는데 이 때부터 이 성은 국가적 상징물이 되었다. 15세기 말 국왕이었던 블라디슬라프 2세 치하에서 후기 고딕 양식적인 요소가 가미되었고, 1526년 합스부르크 왕가가 보헤미아에 대한 지배권을 장악했을 때부터 르네상스 적인 건축이 프라하 성을 점점 복잡하고 정교한 것으로 말들었다. 프라하 성의 건축 양식상 완결은 바로크시대에 이루어졌다. 1753년~1775년 사이에 외관은 현재와 같이 결정되었고, 1918년 대통령의 관저로 바뀌면서 건축가 Josip Plecnik에 의해 성의 내부장식과 정원이 새로 정비되었다.
프라하 성은 수많은 건물들이 모여 하나의 로열 타운을 이루고 있는데 중심 건물은 성 비토 성당이다. 정문에서 바로크 빌딩으로 둘러싸인 게이트를 두 번 지나면 나온다. 카를 4세 때 부터 짓기 시작한 성비토 성당은 50년 이상에 걸친 네오 고딕양식(1873~1929)의 가미와 함께 약 6백년의 공사기간을 기록하며 완성되었다. 내부에 있는 스테인드 글라스가 뛰어나다. 스테인드 글라스는 체코의 화가 알폰소 무하의 그림으로 1936년에 만들어 졌다. 성내의 다른 기념물로는 성내에서 가장 오래된 성 이르지 교회가 현존하고 있다. 성 옆의 계단 위에 서면 유유히 흐르는 블타바강과 아름다운 프라하 시내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다.
길이 570m, 폭 128m인 프라하 성은 전 세계의 현존하는 중세양식의 성 중 가장 큰 규모이다. 동서로 길게 펼쳐진 이 성의 입구는 흐라트차니 광장에 면한 서쪽 정문과 말라스트라나 쪽의 동문, 성 정원쪽의 북문이 있다. 각 문에는 위병 2명씩이 지키고 서 있다. 위병은 7시부터 23시까지 1시간마다 교대한다. 정분에서는 매일 정오에 화려한 위병 교대식이 펼쳐지기도 한다.
프라하 성이 현재의 중요성을 갖게되는 결정적인 계기는 14세기 카를 4세(1346~78년 재위)때의 일이다. 그는 왕궁을 재건하고 성 비토의 성당을 세우면서 프라하 성을 완전히 새로운 모양으로 단장하는데 이 때부터 이 성은 국가적 상징물이 되었다. 15세기 말 국왕이었던 블라디슬라프 2세 치하에서 후기 고딕 양식적인 요소가 가미되었고, 1526년 합스부르크 왕가가 보헤미아에 대한 지배권을 장악했을 때부터 르네상스 적인 건축이 프라하 성을 점점 복잡하고 정교한 것으로 말들었다. 프라하 성의 건축 양식상 완결은 바로크시대에 이루어졌다. 1753년~1775년 사이에 외관은 현재와 같이 결정되었고, 1918년 대통령의 관저로 바뀌면서 건축가 Josip Plecnik에 의해 성의 내부장식과 정원이 새로 정비되었다.
프라하 성은 수많은 건물들이 모여 하나의 로열 타운을 이루고 있는데 중심 건물은 성 비토 성당이다. 정문에서 바로크 빌딩으로 둘러싸인 게이트를 두 번 지나면 나온다. 카를 4세 때 부터 짓기 시작한 성비토 성당은 50년 이상에 걸친 네오 고딕양식(1873~1929)의 가미와 함께 약 6백년의 공사기간을 기록하며 완성되었다. 내부에 있는 스테인드 글라스가 뛰어나다. 스테인드 글라스는 체코의 화가 알폰소 무하의 그림으로 1936년에 만들어 졌다. 성내의 다른 기념물로는 성내에서 가장 오래된 성 이르지 교회가 현존하고 있다. 성 옆의 계단 위에 서면 유유히 흐르는 블타바강과 아름다운 프라하 시내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다.
프라하 성르로 가는 정문,,,저쪽이 구시가지,,,,이쪽은 신시가지,,,,,신시가지도 5백년이 넘는 도시다.
신시가지에 있는 공연장
프라하성 정문,,,,카롤교,,,쪽 다리에 또 문이 있다. 그쪽에서의 프라하 성 야경이 끝네준단다. 이따가,,,그쪽으로
정문쪽 산아래에서 본,,,,,틴교회
체코 왕궁
남쪽 구시가지,,,,,,로마를 그대로 옴긴 도시란다. 뽀족탑이 천개가 넘는단다.카를4세가 도시를 위압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건축했단다.
대통령 관저
이성을 다시 회복한 체코 초대대통령동상